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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이 그리는 아야의 인생 이야기

이지훈이 그리는 아야의 인생 이야기글 이지훈(일러스트) | 사진 이진혁(스튜디오 밥), 임효진, 홍태식(사진가) | 2020-04-30 "아야야! 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랑 약속했잖아.

오늘은 꼭 같이 오기로 했는데......." "미안해.

엄마한테 전화 좀 받느라고 그랬지 뭐예요.

근데 아빠도 안 계시고 혼자서 어떻게 해요?" "괜찮아.

우리 딸이랑 데이트하러 온 건데 뭘 그래.

어서 들어가자.

배고프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다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것인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우리 집'이란 단어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그리고 이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난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나에게 가족은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해야만 하며 늘 웃음소리로 가득 차있어야 한다고 믿었었기에 이런 상황 자체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기면 모든 게 괜찮아지리라 기대했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날 이후부터였을까.

나의 마음 한구석에선 자꾸만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길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잊고 지냈거나 외면해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진 못할 거 같단 예감마저 든다.

왜냐하면 이미 너무 많이 변해버렸으니까.

그러니 이젠 더 이상 변하려고 애쓰지도 말자.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자고 다짐해본다.

언젠가 찾아올 기회란 걸 알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봄과 여름 사이인 4월 중순 무렵, 서울 종로구 부암동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카페 앞 풍경이다.

이곳은 지난겨울 내내 눈 덮인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바로 <카페 아모네>다. 이곳 주인장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인 이지훈의 작품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책 《안녕, 아네모네다》 속 주인공이기도 한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체와 개성 넘치는 색감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물들이 담긴 여러 권의 그림책 역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곤 한다.

그런 만큼 이번 신간 소식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으리라 짐작된다. 이번 신작 『아야의 꿈』은 전작보다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라 더욱 반갑다.

특히 이전 작에서 주로 다루어온 여성 캐릭터 중심의 서사 구조 대신 남성 인물과의 관계성 및 성장 과정 등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입체적인 스토리 전개 방식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아울러 기존 작품들에서 보여준 특유의 감성 표현력뿐 아니라 섬세한 묘사 능력 또한 한껏 발휘된 듯싶은데, 이를 통해 그간 감춰져왔던 아야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도 있겠다. 사실 처음 아야의 존재를 접했을 때는 다소 당혹스럽긴 했었다.

그러나 이내 곧 익숙해졌는지 어느덧 그녀와의 만남이 기다려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건 아마 나와 비슷해서일 테다.

누구든 마찬가지였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린 서로 닮아가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문득 궁금해진다.